모세는 어릴때부터 이집트 왕궁에서 자라서 이집트의 첨단 학문과 언변과 지도력을 배워왔습니다. 그리고 나이 40에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열정이 생겼으나(행 7:29-30) 그것이 자칫 살인으로 이어졌고 미디안으로의 도피생활을 80세까지 하게 됩니다. 신앙은 열정만으로 되지 않지요. 이제 40년간의 연단생활까지 거쳐서 하나님이 쓰실 지도자로 다듬고 겸손해지고 준비되어진 모세가 80세에 부름을 받게 됩니다. 신자가 하나님의 은혜를 다 받았다고 해서 다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민수기 12장에 보면 모세의 누이 여선지자 미리암과 모세의 형 아론이 모세와 동급대우를 요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대하는 방식과 모세와는 다르게 취급함을 말씀하시면서 지도자로 세우신 모세의 권위에 도전한 벌로 미리암이 잠시동안 문둥병의 징계를 받습니다.
여호수아의 경우도 하나님을 통해 주어진 모세의 말씀과 명령의 유산을 이어받기는 했지만, 가나안땅을 차지할 사명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았기에 모세못지 않게 백성들이 순종해야 할 지도자로 선정이 되었습니다.(수 1:17,18 ;3:7; 4:23; 8:32)
그러나 여호수아 19장 49-50절에 재밌는 사실이 나오는데,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12지파에게 땅을 분배한뒤에 마지막으로 이스라엘백성들로부터 거꾸로 자신의 거주지를 얻는 절차를 갖습니다. 물론 이것은 하나님의 명령에 의한 것이었지요. 여호수아가 백성을 이끄는 지도자이고 크나큰 공적들을 이루었지만, 자기 권력대로 거주지를 가져가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더군다나 여호수아가 살 딤낫세라라는 곳은 산간지방인 곳인데다가 폐허였던 곳을 여호수아가 재건축해서 사는 것입니다.(19:50) 정말 여호수아의 지도자로써의 멋있는 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오늘날 이런 지도자들이 많아진다면 희망이 있는 것이지요.
평신도나 목회자나 왕같은 제사장으로써 하나님앞에서 다 동등한 신분입니다. 그러나 목회자는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말씀과 신학에 대해 바로 서있지 않으면 많은 평신도들을 영적으로 잘못된 길로 망가뜨릴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평신도와는 다르게 특별히 다루시고 특별한 권한과 은혜를 주시기도 하는 것입니다.
구약때 속죄제를 드릴때 대제사장에 대한 속죄제와 일반전체 백성에 대한 속죄제 제물이 수송아지로 동급이었습니다. 그만큼 지도자의 역할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위에서 말한 측면외에는 신분적으로 동등하고 지도자도 하나님의 종에 불과하기 때문에 여호수아처럼 백성위에 군림하지 않는 종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이런 모습이 지도자에게서 쉽지가 않습니다.
오늘날 목회자들은 교회를 영혼들을 말씀으로 바르게 양육하고 세우는 곳으로 맡겨준것으로 생각지 않고, 자기 소유와 사업체로 생각하는 경향들이 많습니다. 그것이 결국 평신도들이나 일반 불신자에게 본이 안되는 행동으로 나타나게 되지요. 물론 교회가 커지다보면 연약한 인간이기 때문에 컨트롤하기 힘든 욕심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그런 것에 경종을 울리고 긴장을 줄 수 있는 평신도들의 세워짐이 많이 필요한 때입니다.
민수기 12장에 보면 모세의 누이 여선지자 미리암과 모세의 형 아론이 모세와 동급대우를 요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대하는 방식과 모세와는 다르게 취급함을 말씀하시면서 지도자로 세우신 모세의 권위에 도전한 벌로 미리암이 잠시동안 문둥병의 징계를 받습니다.
여호수아의 경우도 하나님을 통해 주어진 모세의 말씀과 명령의 유산을 이어받기는 했지만, 가나안땅을 차지할 사명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았기에 모세못지 않게 백성들이 순종해야 할 지도자로 선정이 되었습니다.(수 1:17,18 ;3:7; 4:23; 8:32)
그러나 여호수아 19장 49-50절에 재밌는 사실이 나오는데,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12지파에게 땅을 분배한뒤에 마지막으로 이스라엘백성들로부터 거꾸로 자신의 거주지를 얻는 절차를 갖습니다. 물론 이것은 하나님의 명령에 의한 것이었지요. 여호수아가 백성을 이끄는 지도자이고 크나큰 공적들을 이루었지만, 자기 권력대로 거주지를 가져가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더군다나 여호수아가 살 딤낫세라라는 곳은 산간지방인 곳인데다가 폐허였던 곳을 여호수아가 재건축해서 사는 것입니다.(19:50) 정말 여호수아의 지도자로써의 멋있는 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오늘날 이런 지도자들이 많아진다면 희망이 있는 것이지요.
평신도나 목회자나 왕같은 제사장으로써 하나님앞에서 다 동등한 신분입니다. 그러나 목회자는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말씀과 신학에 대해 바로 서있지 않으면 많은 평신도들을 영적으로 잘못된 길로 망가뜨릴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평신도와는 다르게 특별히 다루시고 특별한 권한과 은혜를 주시기도 하는 것입니다.
구약때 속죄제를 드릴때 대제사장에 대한 속죄제와 일반전체 백성에 대한 속죄제 제물이 수송아지로 동급이었습니다. 그만큼 지도자의 역할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위에서 말한 측면외에는 신분적으로 동등하고 지도자도 하나님의 종에 불과하기 때문에 여호수아처럼 백성위에 군림하지 않는 종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이런 모습이 지도자에게서 쉽지가 않습니다.
오늘날 목회자들은 교회를 영혼들을 말씀으로 바르게 양육하고 세우는 곳으로 맡겨준것으로 생각지 않고, 자기 소유와 사업체로 생각하는 경향들이 많습니다. 그것이 결국 평신도들이나 일반 불신자에게 본이 안되는 행동으로 나타나게 되지요. 물론 교회가 커지다보면 연약한 인간이기 때문에 컨트롤하기 힘든 욕심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그런 것에 경종을 울리고 긴장을 줄 수 있는 평신도들의 세워짐이 많이 필요한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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