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는 모두 고백되어야 하는가? 다윗은 죄를 고백하는 문제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는 "자기 허물을 능히 깨달을 자 누구리요 나를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하소서"(시 19:12)라고 외쳤다. 다른 곳에서는 "내 죄악이 내 머리에 넘쳐서 무거운 짐 같으니 감당할 수 없나이다"라고 하였다(시 38:4). 그는 우리의 죄의 심연이 얼마나 깊은가를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죄에는 얼마나 많은 얼굴이 있으며, 이 히드라(hydra)에게는 얼마나 많은 머리가 있으며, 그것이 얼마나 긴 꼬리를 끌고 다니는가를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죄를 일일이 나열하지 않았다. 다만 그는 자기의 악행의 심연에서 주님께 부르짖었다. 즉, 나는 눌렸나이다, 나는 묻혔나이다, 나는 질식당하나이다. "음부의 줄이 나를 두르고"(시 18:5), 나는 깊은 수렁에 빠졌나이다(시 69:2, 3, 15, 16). 나는 쇠약하며 죽어가오니 주의 손을 내밀어 나를 끌어내소서라고 부르짖었다. 다윗도 자기의 죄들을 낱낱이 셀 수 없었다는 것을 보면, 누가 자기의 죄를 일일이 셀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인가?
하나님을 조금이라도 두려워하는 마음을 갖게 된 사람들은 이 잔인한 행위로 인해서 영혼에 가장 참혹한 고통을 받는다. 그들은 먼저 자신들에게 질문하였고 그들의 방법에 따라 죄를 큰 가지, 작은 가지, 잎으로 분류하였다. 그 다음에 죄의 질과 양과 환경을 고려하였고, 따라서 문제는 다소 급진되었다. 그러나 그들이 더 멀리 전진하여 사방이 하늘과 바다로 둘러싸였을 때에는, 항구나 정박지는 없었다. 나아가면 갈수록 눈앞에 있는 덩어리가 더욱 커졌다. 참으로 갈수록 태산이었다. 긴 우회로를 따라 갈지라도 빠져나갈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제물과 칼 사이에 몰리게 되었다. 드디어 결과는 절망뿐이다.
~~~~~~~~~~~~~~~~~~~~~~~~
여기서 독자들은 생각해 보라. 일년 동안에 한 모든 악행을 어떻게 다 헤아릴 수 있으며, 매일 지은 죄를 어떻게 다 기억할 수 있겠는가? 하루에 한 실수만을 밤에 살펴보더라도 기억이 잘 나지 않을 것이다. 우리들을 늘 따라다니는 죄는 그토록 많고 그토록 다양한 것이다! 나는 비교적 중대한 죄를 서너 개 눈여겨보고는 그들의 의무를 다했다고 생각하는 따위의 야만적이고 우둔한 위선자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필자는 하나님을 진정으로 예배하는 사람들에 대해 말한다. 이들은 자기를 살펴볼 때 억눌림을 느낄 뿐 아니라, "우리 마음이 혹 우리를 책망할 일이 있거든 하물며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하나님일까보냐"(요일 3:20)라고 한 요한의 말까지도 자신에게 적용시키고, 따라서 우리의 이해력을 훨씬 초월한 지식을 가지신 심판자 앞에서 떠는 자들이다.
나는 이것이 어떤 종류의 법인가를 요약해서 말하겠다. 첫째로, 그것은 전혀 실행될 수 없으며, 따라서 멸망시키며 정죄하며 혼동시키며 파멸과 절망에 빠뜨릴 뿐이다. 둘째로, 이 법은 죄인들로부터 자기의 죄에 대한 참된 깨달음을 빼앗음으로써 그들을 하나님과 자신에 대해 무지한 위선자로 만든다. 실로, 그들은 죄를 일일이 헤아리는 데 온 정신이 팔린 나머지, 자기의 마음속에 감추어진 악의 수렁과 은밀한 범죄와 그 추악성을 잊어버린다. 이것을 알았다면, 특히 자신의 비참함을 절실히 깨달을 것이다.
고백을 위한 확실한 규칙은 바로 우리의 악의 깊고 깊은 것을 우리로써는 도저히 알 수가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고백하는 것이다. 세리의 고백이 이 원칙에 따른 것임을 우리는 안다.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눅 18:13). 이것은 "저는 실로 크고 큰 죄인입니다. 저는 전적으로 죄인입니다. 저의 죄들이 얼마나 큰지를 저의 마음으로 깨달을 수도 없고 제 입술로도 말할 수 없나이다! 주의 그 깊고 깊으신 긍휼하심으로 저의 이 깊고 깊은 죄를 삼켜 주시옵소서."
무슨 일인가 하고 당신은 물을 것이다. 죄는 하나도 고백하지 말라는 것인가? "나는 죄인입니다" 하는 간단한 말이 아니면 하나님께서 어떤 고백도 받으시지 않는다는 말인가? 그렇지는 않다. 오히려 우리는 주님 앞에 온 마음을 쏟아 놓을 수 있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단순히 우리가 죄인인 것을 고백할 뿐만 아니라, 우리가 죄인인 것을 진심으로 인정해야 한다. 우리의 죄의 오점이 얼마나 크고 얼마나 다양한가를 진실로 인식해야 한다. 우리가 불결하다는 것 뿐만 아니라 우리의 불결이 어떤 종류의 것이며, 얼마나 크며 얼마나 다양한가를 인정해야 한다. 우리가 빚진 자라는 것 뿐만 아니라 그 빚이 얼마나 크고 무거우며, 얼마나 많은 의무를 지고 있는가를 인정해야 한다. 상처를 입었다는 것 뿐만 아니라 얼마나 심한 매로 상처를 입었는지를 고백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고백으로 죄인들이 하나님 앞에 온 마음을 쏟아 놓은 때에도, 아직도 많은 죄가 남아 있다는 것과 은밀한 죄악이 너무 깊이 잠겨있어서 도저히 측량할 수 없다는 것도 죄인은 진지하고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 따라서 다윗과 함께 "자기 허물을 능히 깨달을 자 누구리요 나를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하소서"라고 울부짖어야 한다(시 19:12).
<칼빈의 기독교강요 3권 4장 중에서>
'신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앙생활에 있어서 사람을 보는 가치관의 중요성 (0) | 2009.04.25 |
---|---|
성령은 내 마음대로 채우고 부리는 분이 아닙니다. (0) | 2009.04.25 |
옳고 그름을 구분하는 것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0) | 2009.03.16 |
적그리스도(anti-Christ)의 성경적 개념 (0) | 2009.02.28 |
구원과 고백 (0) | 2009.02.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