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성령 찬양, 임재, 이곳에 오소서 CCM의 성경적 문제점

true light 2019. 11. 13. 09:16

[성령 하나님은 내가 부르거나 동원하는 분이 아니다.]
성령님과 관련해서 CCM찬양에서 많이 나오는 가사스타일들은 다음과 같을 것이다.

'성령으로 나를 채워달라'
'성령이여 오소서'
'성령의 불을 내려달라'
'성령의 기름부으소서'
'내 잔을 채워주소서'
'이 곳에 오소서'
'이 곳에 임재하소서'

이런 것들이 과연 찬양으로 합당한지 좀 생각해봐야 할 문제이다.
우선 성령론적으로 문제가 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면 무소부재하신 성령하나님은 또한 우리에게 계신다. 이미 주권적으로 계신 성령님께 또 인간이 감히 오라고 하거나 채워달라고 할 자격이 있는가? 누가 도대체 주권자인가? 성령 하나님이신가 사람인가?
어떤 분들은 이런 표현들을 성령에 대한 간절한 표현이라고 말할 지 모르겠지만, 문제는 성령 하나님 더 나아가서 삼위일체 하나님의 주권에 나의 삶을 맡기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현실을 신자로써 살아내는 자세보다는 성령님을 부리고 이용해서 현실의 고통을 마취시키려는 인식을 보이는 것 같다. 그리고 정말 극히 예외적인 경우가 있긴 하지만,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생각하고 이해하고 깨닫고 고민하고 의식하는 속에 성령이 역사하시는 과정은 생각못한채 바로 현실의 고통이나 문제를 단번에 해결하려는 생각으로 그냥 단순하게 성령을 부르며 직행해버리는 신비주의적인 모습을 보인다.

특히 '의에 주리고 목이 마르니 성령의 기름 부으소서, 의에 주리고 목이 마르니 내 잔을 채워주소서'라는 어느 CCM가사는 이러한 면을 잘 보여준다. 정말 의에 주리고 목이 마르면 그냥 맹목적으로 성령을 동원하려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을 듣고 보고 연구하면서 알려고 하는 부지런함과 기도로 그 속에서 갈급함을 채워주시는 성령을 경험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성령께서 역사하신다는 것은 이러한 현실의 마취나 황홀경에 빠지거나 몸에 특이한 현상이나 무언가 신비한 현상만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다. 성령님은 말씀과 함께 역사하시고 거듭나게 하셔서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예수님을 알게 하시고(요 14:26, 15:26, 16:13-14), 우리에게 내주하시며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사랑에 참여케하시고 예수님을 닮아가고 예수님의 증인의 삶의 모습으로 가게 한다는 것이다.(행 5:30-32, 갈 5:16, 22, 빌 2:1, 3:3, 딛 3:5, 벧전 1:2, 12) 이것이 성령님의 가장 중요한 역사하심이다. 오늘날 찬양 등에서 성령하나님만을 따로 떼어내서 성령님을 수단화시키는 것은 성경적이지 않다. 성령하나님은 삼위 하나님으로써 성부, 성자와의 관계안에서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성령을 이용하여 우리가 원하는 대로 그 분을 조종하고 불러들이려는 자세를 버리고, 말씀에 대한 부지런함을 통해 하나님을 알아가고 이미 우리와 관계하신 거룩하신 인도하심을 따라서 거룩한 신자로써의 정체성과 가치관으로 사는 삶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한다면 진정한 성령의 역사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성령의 임재라는 것을 남발들을 하는데, 잘 생각해야 할 부분이다. 성령의 임재라는 것은 우리가 시각적으로 생각하는 공간이동이 아니다.
성령님은 무량하고 편재하신 분으로 어느 특정지점에만 계신 분도 아니며, 시대적으로도 구약을 포함하여 영원히 계시는 삼위하나님이기 때문이다.
오순절 성령 임재사건은 구약까지의 이스라엘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모든 민족의 하나님으로써 예수님의 복음사역을 성령을 통해서 증거하는 우주적 교회를 세운다는 첫 시작을 알리는 특수한 사건이기에, 다시 역사에 반복될 수 있는 사건도 아니고 우리가 부흥운동으로 흉내낼 사건도 아니다.

자기 중심적인 찬양을 지양하고 바른 성경의 관점에서 하나님을 올바로 경배하고 바른 고백이 있는 찬양들이 늘어났으면 하는 바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