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불의한 재판관과 과부의 비유는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면서 기도하면 응답된다'라는 의미의 비유가 아닙니다.)

true light 2016. 4. 20. 23:01

(불의한 재판관과 과부의 비유는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면서 기도하면 응답된다'라는 의미의 비유가 아닙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장이 있는데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나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주께서 또 이르시되 불의한 재판장이 말한 것을 들으라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누가복음 18:1-8)

본문은 끈질기게 하나님께 물고 늘어지면 응답해주신다는 의미로 쓰인 구절이 아닙니다. 그리고 기도해서 하나님의 보좌를 흔들어서 응답을 얻어낸다는 식의 비성경적 사고방식도 수정해야 할 것입니다.
본문을 이해하려면 17장 20절 부터는 나오는 다가올 하나님 나라의 완성에 대한 주제속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바리새인들에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눈앞에 와 계심으로 하나님 나라의 현존을 말하고(21절), 이미 예수님과 함께 하는 제자들에게는 예수님의 재림을 통해 이뤄지는 하나님 나라의 종말적 완성을 말씀하고 계십니다.(22-37절)

18장에 나오는 본문에서 말하는 과부는 하나님 외에는 의지할 것 없는 신자들의 모습을 비유적으로 나타냅니다. 그가 가진 원한은 신자가 이 세상에서 신자의 모습으로 살아감으로써 생기는 모든 원통함과 고통들을 의미합니다.
불의한 재판관 조차도 과부의 끈질긴 청원에 들어줄 정도이면 하나님은 우리 신자의 원통함을 반드시 갚아주신다는 것을 대조적인 표현으로 알리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17장에서의 예수님의 재림으로 이루어지는 종말론적 하나님 나라 완성의 의미와 연관이 되므로, 이러한 하나님의 응답과 갚으심은 종말에 공의의 심판이 행해질 때 진정으로 이루어 질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6장 표현 참조)

또 8절에 "그러나 인자(人子)가 올 때에 세상에 믿음을 보겠느냐"라고 하신 예수님의 독특한 말씀과도 연관됩니다. 이 말은 예수님이 오실 때 세상속에서 신자로써의 고통과 원통함을 가진 자들이 얼마나 있겠는가?, 그래서 세상은 편하게 돌아갈 지 모르지만 진정한 신앙인도 찾아보기 힘들고, 영적으로는 암울하고 소망이 없어보이는 시기라는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17장 후반부에 예수님이 오실 때를 노아의 때와 롯의 때로 비유하는데, 하나님 나라에는 관심이 없고 현재적인 삶에만 모든 관심이 집중된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임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명목상으로만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에게도 해당됩니다. 진정한 신자는 예수님의 재림과 종국에 완성될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고 그 촛점에서 현재의 삶을 보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현재만 보는 세상속에서 고통을 받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러한 신자의 모습이 예수님이 오실 때 얼마나 있겠느냐라는 말씀입니다. 주님앞에 부르심을 받을 때까지 그러한 암울하게 보이는 세상에서 신자의 삶을 견딜 수 있는 방법은 바로 18장 1절에 나오듯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않으며 견디어 나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