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오순절 성령사건은 역사상 반복되지 않는다.

true light 2015. 9. 12. 10:01

오순절은 무교절 둘째날부터 일곱주가 지난 다음날인 50일째 되는 날이지요. 구약에서 맥추절, 칠칠절로 불렸던 오순절은 이집트에서의 종노릇한 것을 생각하며 거기에서의 구원을 감사하는 날인데, 신약에서도 예수그리스도의 구원하심을 가시적으로 증명하는 사건입니다.

구약이나 오순절이전에도 성령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순절 성령이 임하신 사건은 구약과 달리 유대인만 아닌 이방인도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공유하는 전 세계적인 교회가 세워짐을 알리는 사건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2장에 나오는 방언도 이방인들에 대한 복음 전파의 언어적 장벽을 없애는 외국어 능력을 주신 것입니다.

급하고 강한 바람같은 소리나,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보이는 성령강림의 현상들이 나타난 것은 성령강림의 공식행사를 나타내는 특별한 사건입니다. 이런 눈에 보이는 오순절 성령임재의 사건이 성경전체의 관점으로 봤을때 어느 시대에나 보편적으로 묘사되는 성령의 역사의 특징이 아닙니다.

오순절 사건은 구약의 이스라엘만의 교회가 아니라 예수님 승천이후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의 진리를 증거하며, 이방인까지 아우르는 전세계적인 그리스도의 교회가 세워지기 위한 성령의 사역이 시작되기 위한 세레모니이므로, 한번밖에 없는 특별한 사건입니다 .

즉 오순절 이전에도 개별적인 성령의 역사하심과 활동하심이 분명히 있었습니다. 구약에도 또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에도 성령께선 활동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승천후에 오순절 사건은 이제 주님과 전 세계 교회적 차원의 연합을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도를 통해 교회가 시작되는 시점의 시대적이고 특수하며 단회적인 것이므로, 이러한 역사가 오늘날까지 반복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의 시대마다 계시하시고 역사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히 1:1)마치 나무에서 뿌리의 터가 자리잡는 시기와 나무가 자라는 것은 다르듯이 말이죠..

구약에서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에서 인도하실 때에는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 먹여 주셨지만,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온 다음에는 만나 내리시기를 그치셨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역사하시는 스타일이 달라졌다 해서 하나님께서 변하신 것을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지요.

또한 오순절 사건은 사람들의 열심과 기도에 의해서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구약에서 이미 하나님께서 약속하셨던 것의 성취입니다.(사도행전2:16-21;요엘2:28-32)

복음의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을 믿게 하는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우리는 거듭났으며, 그 성령께서 이미 우리 안에 계십니다. 이미 예수님을 믿는 우리안에 성령이 계시는데 또다시 오순절의 역사를 구하면서 성령님보고 우리에게 오시라 말라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짓이며, 마치 접신하는 것을 연상시키는 듯한 무속신앙적 관념입니다.

복음의 문이 처음열리는 곳에는 현상적인 특별한 성령의 역사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지역적인 역사이지 오순절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을 뒷받침하는 공식적, 우주적으로 임재한 오순절 역사와는 구별이 되야 할 것입니다.

특별히 사도행전 8장은 특별히 눈여겨 볼 부분인데요, 여기 사마리아인에게 있어 믿음과 성령을 받는 것이 서로 분리되어 나타나는 특별한 체험은, 유대인들이 이방인과의 혼혈이라고 개같이 취급하고 멸시하던 사마리아같은 사람에게도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다는 표시를 성령의 임재를 통해서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그 때만의 특별한 사건인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 8장, 10장 고넬료사건, 19장의 특별한 성령의 역사는 모두 인종, 계층에 상관없이 성령이 동일하게 임하여, 이제는 하나님의 은혜가 이스라엘로부터 외인으로 취급받던 이방인들에게도 차별없이 주어진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특별한 시기적 사건입니다.


여기 사마리아에서의 얘기와는 달리 성경에선 보통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예수님을 믿게 하며, 구원의 보증으로 성령께서 내주하게 되는 것이 일반적 성경의 관점입니다. (로마서 8:2,8:23,고후1:22, 고후5:5, 갈3:2, 에베소서1:3, 빌1:19, 살전1:5,디도서3:5 3:6 행2:38, 롬8:9-11 등등) 그러므로 믿음과 별도로 성령체험을 요구하며, 그 체험의 증거로 방언등이 나타나야 한다고 필수적으로 요구할 만한 근거는 없습니다.

성령은 예수그리스도의 진리를 증거하고 예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요 15:26, 요16:13). 복음의 진리를 깨닫는데로 이끄는 것과 관계가 없으며, 성령의 역사를 빙자하여 자신을 우상화시키는 사람들이 많은데, 과연 그것이 정말 성령의 역사인지요?

또 안수를 통해서 성령을 받는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안수를 통해서 성령을 받는 묘사는 성경에서 사도행전 8장과 19장밖에 없습니다. 다른 곳에서는 안수를 통해서 믿음을 가지며 성령받는 얘기가 나오지 않습니다. 여기 안수를 통해 성령이 임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도로써의 권위를 보여주기위한 특별한 사건입니다.

오늘날 이것을 자기체험에 근거해서 보편화시키고 자기를 나타내기 위해 남발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성령님은 사람이 조종하는 분이 아니라, 주권을 가지고 자신의 뜻대로 역사하시고 인격을 가지신 삼위 하나님이십니다.(고전 12:11)